20년째 도인처럼 사는 남궁옥분
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포크송의 여왕으로 군림했던 그녀. 그때의 낭창낭창한 독특한 목소리는 여전했지만 그녀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는 못했다. 소녀 시절 수줍음 대신 인생에 달관한, 아니 해탈한 중년 여인이 되어버렸다. 그 해탈감이 자유와 평화를 안겨주었다. 남궁옥분은 이기적일 정도로 행복에 집착한다. “우주의 주인공이 나라고 생각하면 너무나 행복하다”는 그녀는 “태양도, 나무도, 꽃도, 시냇물도 언제 올지도 모르는 나를 위해 아름답게 자라고 흐르는구나!”라고 생각한다는 것. 한량 이봉규는 오늘 마치 도인과 마주한 기분이다.
남궁옥분은 시간만 나면 산책하면서 숲하고 대화한다. 멀리 여행 갈 필요 없이 동네 근처 산에 올라 마치 백설공주가 된 것처럼 자연과 대화하며 행복감을 만끽한다. 그녀도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으면서 인생의 저 밑 몇백 미터까지 다녀온 후 이제는 비로소 행복감을 절절히 느끼며 산다. “기쁨과 평화의 정신이 나를 지배한 지 오래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녀는 58년 개띠 이봉규와 동갑내기다. 대부분의 58년 개띠들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 피해자이기 때문에 드세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녀는 1970년생 개띠처럼 여리고 밝았다(참고로 나의 아내가 1970년생 개띠이기에). 아마도 해탈한 행복감에 젖어살면서 삶의 찌든 때를 날마다 씻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올해 60세. 이날을 손꼽아 기다려왔단다. 한평생 짝사랑도 많이 해봤고 시답지 않은 짧은 연애도 할 만큼 해봤는데 동화 속 왕자님은 아직까지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항상 누군가와 만날 때는 이 사람 이상은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늘 신통치 않았다. 그러고는 이미 20년 전에 남자에 대한 환상을 깨고 혼자만의 행복 찾기에 나섰다. 그 후 도인처럼 수도생활 같은 20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60세에 운명적인 사랑을 만난다”는 유명한 도인의 예언을 동아줄처럼 믿고 부푼 희망을 가슴에 품고 기다려왔다. 드디어 2017년 그녀는 60세의 봄을 맞이하고 있다. 꼭 그 예언가의 말 때문만이 아니라 60세가 되니 그녀는 너무나 행복하다. 선배 가수 송창식이 60세가 되던 날 남궁옥분이 물었다. 남궁옥분은 송창식보다 11세나 어렸기에 60세의 느낌을 알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송창식은 “야~ 나 이제 한 살이야!” 그 말을 60세가 되어버린 그녀가 되새김질한다. “인생의 반환점을 이제 막 돌았어요”라고. 이봉규도 60세가 되고 보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알 것 같다. “송창식은 크신 분이라 한마디 한마디가 철학가가 내뱉는 소리 같다”고 그녀는 높이 평가한다.
매일 큰절 100번, 17년째 하고 있다
남궁옥분이 도인처럼 20년을 살아온 것도 송창식의 영향이 컸다. 삶의 철학뿐만 아니라 그녀의 건강관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큰절을 100번 이상 한다. 벌써 17년째 고행 같은 ‘큰절하기’를 계속하고 있다. “하루를 빼먹으면 몇 달간의 수행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송창식의 계명을 무조건 따르고 있다. 큰절을 100번 이상 하는 것은 육체적으로도 엄청난 운동이 되지만 정신적으로도 참수련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 “아마 매일매일 수행을 안 하는 스님도 꽤 많을걸요?” 하며 자신을 대견하게 여긴다. 송창식은 매일방에서 ‘빙빙돌기’를 몇 시간 동안 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해외공연 때도 빠진 적이 없다고 하니 유별나기로는 그를 따를 자가 없을 것 같다.
하여튼 그녀는 고행 같은 큰절하기를 죽을 때까지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하겠다고 누군가에게 약속을 했다고 한다. 누군가란? 종교적인 의미는 아니라고 애써 부인한다. 그녀는 특정 종교에 얽매이기보다 모든 종교를 아우르는 도인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사찰 행사에 가면 불자 가수가 되고 교회 행사에 가면 크리스천 가수가 된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결국 모든 종교가 사랑과 평화를 추구하는 것 아닌가? 나는 특정 종교를 떠나 사랑과 평화를 삶의 지표로 삼고 있다”고 한다. 그녀만의 철학이 왠지 실증적으로 보인다.
남궁옥분은 먹는 음식관리에도 철저하다. “경유차에는 경유를 넣고 휘발유차에는 휘발유를 넣어야 하는 것처럼 한국 사람 체질에 맞는 음식을 섭취해야 건강을 잘 유지할 수 있다”고 식품영양학 박사처럼 강연을늘어놓는다. “한국 사람은 고기를 먹어야 하는 체질이고 일본 사람은 생선과 야채를 먹어야 하는 체질”이라는 것. 그리고 “한국사람은 고구마, 감자, 양파, 당근 등 뿌리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송창식의 영향도 받았지만 음식과 관련해서는 최백호가 대가(大家)라고 엄지손가락을 높이 쳐든다. 송창식과 최백호 두 스승에게 배워서 그런지 종편에 나오는 관련 분야 전문가 수준 이상이다.
주량을 물어보니 당연한 대답이 돌아왔다. “술 분해 능력이 없어서 소주 한두 잔만 마셔도 취하기 때문에 안 마신다”면서 “예전에 진토닉 두 잔 마시고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어 그 후로는 술 실력을 인정하고 안 마신다”고 털어놓는다. 젊었던 시절 개그맨 주병진이 남궁옥분을 가리키면서 “너는 술을 안 먹어서 밥맛없다”고 핀잔을 준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부터 술은 안 마셔도 술자리에서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해왔다고 자평한다.
실력 있는 화가로도 인정받는 그녀
남궁옥분은 화가로도 유명하다. 얼마 전 탤런트 김혜진과 이화선을 비롯해 모델 출신 권나연, 가수 김태곤, 개그맨 임혁필 등 연예인 10명이 참여한 ‘아트테이너-스타 초대’전이 코엑스에서 열렸다. 제1회 서울국제예술박람회 특별 전시회였는데 성황리에 마쳤다. 사실 작년에 이봉규도 그녀가 직접 그려준 캐리커처를 선물로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놀랐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어떻게 가수가? 이렇게 그림을 잘 그릴까? 그녀는 “노래만 빼고 다 잘한다”고 은근히 가진 재능을 자랑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그렸고 지금은 상당한 실력의 화가로 인정받고 있다. 2010년에는 배우 하정우, 구혜선, 강석우, 김영호, 지진희, 유준상, 개그맨 정종철 등과 함께 부산비엔날레 기념 ‘ARTiSTAR’ 특별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내가 노래를 이렇게 열심히 했으면 ‘대가수’가 되어 있을 것”이라면서 “노래는 내가 하는 일이고, 그림은 하고 싶은 작업”이라고 정리해준다. ‘60세는 이제 막 한 살’이라는 그녀의 여유 있는 삶의 철학이 이 대목에서도 묻어나온다.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한 획을 그었던 가수의 자평(自評)치고는 너무나도 겸손하다.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진실함도 느껴진다.
독야청청함을 잃지 않는 삶
한량 이봉규의 인터뷰 상대로 볼 때 너무 철학적인 그녀의 성품은 장점이기보다는 단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헤집고 찔러도 허점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이봉규의 주특기인 치정관계 등 느닷없이 훅~ 들어가는 질문을 해도 흔들림이 없다. “혹시 무슨 강박관념이 있어서 그럴까?” 하는 지레짐작에 또 물고 늘어져도 꿈쩍도 안 한다. “사적인 얘기는 묻지 말라. 예전에 어느 기자에게 편하게 자기 얘기를 좀 털어놨는데 없는 말을 지어내고는 그걸 기사로 써서 곤혹을 치른 적이 있다. 그 후로는 절대 인터뷰에서 개인 얘기는 안한다”고 잘라 말한다. 나쁜 경험을 하고 난 후에 오는 트라우마에 의한 결벽증일까? 아니면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강한 신념에서 오는 태도일까? 아리송했지만 인터뷰를 마칠 때쯤 돼서야 판단할 수 있었다. 야리야리하고 가녀린 여인 남궁옥분은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마치 모진 바닷바람 속에서도 독야청청함을 잃지 않는 경포대 소나무와도 같다. 감히 ‘여자 송창식’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싶다. 한평생 ‘여자 송창식’이라는 별명은 처음 접해보는 것이리라! 그녀가 좋아할지 싫어할지 모르겠지만….
2017년 봄, 가을, 겨울 남은 기간 중에 “남궁옥분이 60세에 운명적인 사랑을 한다”는 예언가의 말이 현실로 이뤄지길 열렬히 응원한다. 그러나 설혹 몇 달 안 남은 2017년이 끝나도록 백마 탄 왕자가 짠~ 하고 나타나지 않더라도 그녀의 마음이 서글픔과 실망으로 요동칠 것 같지는 않다. “감사하면서 살 줄 모르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힘주어 말하는 남궁옥분은 왕자가 나타나지 않아도 혼자 백마를 타고 행복하게 달릴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58년 개띠 동갑내기 남궁옥분과의 데이트는 재미보다는 심오했다. 그래서일까? 잔상과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다.
글 이봉규 시사평론가
사진 김수현 player0806@hotmail.com
장소 극동스포츠 라운지M